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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라이프

전태일 열사 50주기 / 추모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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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는 공장에서 미싱을 하던 노동자였다. 과거 농촌에서는 장녀들이 도시로 가 공장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전태일 열사는 어린 소녀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미싱일 말고 재단사를 공부하여 재단사가 된다.

과거 열약했던 노동환경은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일하는 소녀들을 폐병을 걸리게 하였고 전태일 열사는 이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우연히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었고 수중에 책을 살 돈이 없어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였고 어머니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책을 살 수 있게 도와줬다. 당시 근로기준법 책은 한자로만 쓰여있어서

전태일 열사는 한자사전을 보면서 근로기준법을 노트에 적으면서 공부하였다.

당시 아버지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들이 다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열약한 근로환경을 설문조사를 하여 자료를 토대로 언론사와 정부부처에 사실을 알렸지만

이는 사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태일 열사는 자신이 일하는 일터와 사회에서 낙인찍히게 되었고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까지

몰렸다. 그럼에도 전태일 열사는 포기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조직을 만들어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피켓시위를 하였다.

시위를 하다가 경찰과 부딪히게 되었고 강제해산당하게 되자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부었고 몸에 불을 붙이며 

분신 항거를 하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쓰러졌고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언론은 열약한 노동문제를 특집기사로 내었으며 종교계,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구호를 외치며 추모집회 , 철야농성으로 이어졌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사건은 민주노동운동이 성장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자 발판이 되었으며 크게 발전하게 되었고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 , 학생운동 , 민주화 운동의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희생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지금은 어떠한가?

노조는 절대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혔고 노동자들은 여론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위를 하면서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계속해서

추구한다. 전태일 열사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은 민주노총은 '민노총'이라고 불리며 그때의 정신은 어디로 가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로 갈길을 잃은 채로 방황하는가?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쌓아 올린 업적을 이런 식으로 더럽히면서 계속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내가 아닌 모두가 살아야 하는 사회이다. 다 같이 잘살아보자고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를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도 힘써서 계속 세상을 바꾸려고 투쟁하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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